13. 베르디도 대중음악가

어쩌다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뛰쳐나갈 때가 있다. 큰소리를 치고 문을 나서지만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디 갈 때가 있어야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볼일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가정적인 사람이 됐다. 공연이나 특별한 모임을 제외하고는 저녁약속을 만들지 않는다. 2차, 3차하며 옮겨다니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방공연을 가도 마찬가지다. 새벽에라도 꼭 집으로 돌아온다. 마치 연어가 회귀하듯 정확하다. 그래서 내가 즐겨부르는 노래가 있다.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비숍의 '즐거운 우리집'이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아내와 두 딸, 편안한 집안 공기,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

내가 이렇게 가정적으로 사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성악가 중에서도 테너는 몸이 뜨거운 사람이다. 몸안에 열정이 가득하고 욕망도 많다. 유명한 테너들의 여성편력을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본성대로 행동했다면 나 또한 많은 죄를 지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나는 마음으로 죄를 지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이가 아프거나 하다못해 교통위반딱지라도 떼이게 된다.

지난해 6월부터 2개월 동안 미국 10개 도시를 순회하며 찬송가 부르는 법을 강의했다.  아내는 반주자,두 딸은 보조중창단이었다. 강연에서 한풀이식 노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음악은 주로 한을 풀어내고 있다. 본인은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그 한맺힌 노래를 듣는 옆사람은 괴롭다. 슬프고 괴로운 마음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마음, 노래를 할 때는 그런 희생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동안 몇차례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나는 우리 대중음악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등이 도마에 올랐다. 사실 우리 대중가수의 가창실력이나 춤솜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김건모의 노래실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으며 쿨이나 터보도 신세대 댄수가수지만 노래를 잘한다. 박진영의 춤은 마이클 잭슨과 대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가사다. 애인이 친구와 바람을 피우고 아이들은 가출하며 기분 나쁘니 다 때려부수자고 한다. 영어는 또 왜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지. 대중가요계도 그렇지만 성악계도 반성해야 한다. 쓸데없는 권위의식으로 대중과 멀어져가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음대의 '열린 음악회' 거부사건을 보면서 착잡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르디, 푸치니, 스트라우스도 그 시대에는 궁정악사이거나 대중적 지지를 받던 음악가였다. 왜 그렇게 닫힌 마음으로 사는 걸까. TV나 공연을 통해 많이 봤겠지만 나는 동요, 민요, 팝송에서 오페라, 가용까지 안부르는 노래가 없다. 그래도 내게 시비를 거는 성악가는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