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파바로티를 이길 순 없다

마그다 올리베로로 해서 벨칸토창법을 깨우치게 된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그 외에도 내게는 두차례의 음악적 개안의 순간이 있었다. 콩쿠르 때문에 밀라노에 갔다가 페라로라는 원로 테너에게 잠깐동안 고음 내는 방법을 배웠다. 10년간 성악을 하면서도 테너를 사사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나는 비로소 내게 맞는 스승을 만난 것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높은 도에서 여전히 불안정했다. 그러나 그날 1시간의 레슨을 통해 나는 고음의 벽을 완전하게 뚫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고음을 정복할 수 있다니.

또 하나의 사건은 파바레토라는 가곡 코치를 만난 것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가곡의 대부 격인 사람인데 오시모에 2주간 특별강의를 왔다. 3년간 중풍을 앓고 있어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산타 체칠리아에서 보조 피아니스트를 데리고 왔다.

내가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자 그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럴수가" 보조 피아니스트에게 일어나라고 하더니 자신이 직접 피아노 반주를 했다. 그가 말하기를 페르루치오 탈리아비니 이후 끊겼던 이탈리아 가곡의 발성법을 내가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성악가들이 도달하지 못한 그 창법을 어떻게 한국의 성악가가 해냈느냐고 감탄 반, 의아함 반으로 물었다. "베니아미노 질리에게 배웠습니다."

베니아미노 질리는 카루소와 더불어 벨칸도 창법의 대가였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사람이었다. "질리가 언제 사람인데 자네가 그에게 배웠다는 건가?" "그의 디스크를 들으면서 연습했습니다." 나는 질리의 디스크 36장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디스크를 틀어놓고 흉내를 냈다.

진성대와 가성대의 중간부분을 사용하는 것인데 흉내를 내면서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테 파바레토가 확인을 시켜준 셈이었다. 파바레토는 "Peccato !"(그럴수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Va Busseto !"(부세토에 가시오!)했다. 그래서 내가 베르디 콩쿠르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루치아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파바로티와 논쟁을 벌였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의 스승 안토니오 토니니, 파바로티 등이 심사위원이었다. 나는 2차에서 떨어졌다. 그냥 돌아가려는데 파바로티가 날 불러세웠다.당시 내가 부른 곡이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는데 마지막에 "Vincero∼ Vince∼"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내게 그 부분에서 악보상의 쉼표보다 너무 오래 쉬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 맞기는 했다. 그러나 'ce'부분이 아주 고음이어서 그 전에 충분한 숨의 양이 필요했다. 다른 성악가들도 모두 그 부분에서 악보를 지키지 않고 충분한 숨을 들이킨다. 나는 "당신은 그 노래를 부를 때 악보를 지키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는가"라고 대들었다. 파바로티는 "그래도 학생이니 악보대로 부르라"고 했고 우리 사이에 한참 언쟁이 오갔다.

내가 나간 후 토니니는 파바로티에게 "내 제자인데 주장이 굉장히 강한 학생이지만 노래는 잘한다"고 얘기했다. 나중에 토니니에게 들은 얘기로는 파바로티도 "목소리가 굉장히 고급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날 파바로티에게 대들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도 파바로티만한 테너가 없다고 생각한다. 플라시도 도밍고나 호세 카레라스라면 맞대결해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러나 파바로티만큼은 자신이 없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