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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예술가의 웅변은 금


언젠가 모 신문사의 회장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성악가들이 여러명 모인 자리였는데 거기서 나는 "한국가곡에도 발성법 연구가 필요하며 연구비 지원에 언론이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옆에 있던 거물급 음악평론가 한명이 "임선생, 자장면 식으니 빨리 들지"하며 은근히 내 말을 막았다. "선생님, 울면이나 드세요"하고 대꾸하고 말았지만 기분이 언짢았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장관, 국회의원, 저명인사를 만나면 혼자 다 떠든다. 평소 내가 주장하던 바를 얘기하느라 밥 먹을 틈도 없다. 모두들 조용하고 품위있게 식사를 하는데 나혼자 이런 저런 주장을 하니 분위가가 어색해질 때도 많다. 동료 성악가들은 '너 또 시작하는구나'하는 표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런 자리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잘못하고 있는 일, 해야할 일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점잔을 빼느라고 놓칠 수는 없다. 성악가가 왜 그렇게 참견하는 데가 많으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나는 예술가가 예술만 알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미테랑이 해외순방을 할 때에는 영화배우와 함께 한다. 고르바초프는 테너가수와 함께 다녔다고 한다. 예술이 경제나 정치와 결합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지금도 나는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다. 92년 대통령 선거 때는 이종찬씨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고, 무엇보다 정치를안했으면 테너가수가 됐을 정도로 음악을 잘 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종찬씨의 할아버지는 우당 이회영선생. 바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분을 알게 된 후 한동안 나는 독립운동가를 연구했다.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사에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그 뒤에 버티고 서있던 큰 인물이 바로 이회영선생임을 알게 되었다. 매년 이회영선생의 추모식날이 되면 나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달려간다. 그렇게 6년째 추모가를 부르고 있다.


공중파 방송의 토크쇼에 몇 번 출연하면서 나는 공공연히 문화체육부장관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또 꼭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문체부장관의 면면을 보라. 문화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나라의 문화정책이 엉성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개선을 위해서는 나 같은 전문예술인이 나서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지식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처신한다. 그들의 눈에는 정치인을 지지하고, 문화정책 담당자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문체부장관이 되겠다고 주장하는 내가 어리석어보일지 모르겠다.


지식인이 침묵을 지키는 사회는 두가지다. 완전한 낙원이든지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사회든지. 둘 다 아니라면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웅변이 바로 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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