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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음악인생 뒤흔든 '30분 특강'



오시모에서 내가 살았던 집은 월세 3만원의 저택. 그러나 말이 저택이지 500년된 폐가였다. 난방시설은 고사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난로를 사고 거금 5만원을 들여 전기공사를 했다. 장롱도 없고 침대도 주워다 썼지만 없어서는 안될 것이 두가지 있었다. 피아노와 전축. 7만5천원짜리 전축을 구입하고 한달에 3만원을 내고 임대하는 방식으로 피아노를 들여놨다.


그리고 나중에 서울에서 온 손님이 카세트 라디오를 하나 줬다. 명색이 오페라의 나라에서 2년간 성악공부를 했던 내가 오페라라고는 세편 밖에 못봤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사실이다. 한달에 25만원으로 근근이 사는 내겐 오페라 구경이 먼나라 얘기였다.. 대신 나는 전축과 카세트로 음악공부를 했다. 우선 디스크를 꾸준히 사모았다. 기라성 같은 테너와 소프라노의음반을 구해다 틀어놓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최대한 흉내를 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카세트 라디오로는 녹음을 했다. 당시 라디오방송에서 '성악가의 초상'이라는 프로를 방송했는데 500원짜리 테이프를 사다가 한회도 빠지지 않고 녹음했다.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육성, 인생관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시모 아카데미에서의 수업은 하루 4시간. 많은스승이 있었지만 마리아 칼라스의 뮤직코치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토니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까지도 내 노래는 '소리자랑'스타일이었다. 토니니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심하면 40번씩 반복하게 했다. 한 한국인 유학생은 30번째에 피아노를 탕 치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나 역시 40번을 반복하노라면 돌기 일보직전이 되곤 했지만 꾹 참았다. 그러나 스승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거침없이 항의하기도 했다. 멜라니 교수는 다혈질에 고집이 세다는 이유로 나를 '시칠라아노'라고 불렀다. 한번은 마리아 칼라스 이전에 일세를 풍미했던 소프라노 마그다 올리베르가 특별레슨을 하러 오시모에 왔다.


그런데 내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눈을 감고 있는 폼이 졸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제자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위대한 성악가가 주무시면 어떡합니까?" 벌떡 눈을 뜬 올리베르는 "그저 눈을 감고 있었을뿐"이라며 발끈했다. 기분이 나빠진 상태에서 올리베르와 나는 '사랑의 묘약'과 '오텔로'의 창법이 같니 다르니 하며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화가 난 올리베르가 방을 나가더니 학장에게 갔다. 학장은 "고집이 세서 그렇지 진실한 학생"이라고 해명한 후 나를 불렀다. "올리베르 선생을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게" 먼저 사과를 했더니 올리베르도 화가 풀린 것 같았다. 그리고 호텔로 내려가는 30분 동안 벨칸토 창법의 진수를 가르쳐주었다. 소리를 어떻게 전달할 것이며 숨 처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짧은 순간의 이야기가 내 음악인생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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